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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경부고속도로도 "시기상조"라던 시절

by JUNG-2503 2026. 7. 10.

 

1966년, 세계은행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4차선 고속도로를 두고 "경제적으로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밀어붙였고, 결국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고도성장의 척추가 됐습니다. 지금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60년 전 그 장면이 자꾸 겹쳐 보입니다.

 

성공의 이면, 50년 묵은 불균형

 

경부축과 남동임해공업지역, 여수·광양 같은 임해 거점에 투자와 인프라가 집중되는 동안, 호남 내륙과 강원은 오랜 시간 구조적 저발전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산업단지와 대학, 청년 일자리가 경부축을 중심으로 수도권과 영남에서 계속 재생산되는 사이, 나머지 지역은 인구 유출과 산업 공백이 맞물리는 악순환을 겪어야 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는 여기에 또 다른 층위가 더해졌습니다. 첨단산업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이번에는 대구경북과 동남권마저 순서대로 배제되는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시장의 선호에만 맡겨두면 지역 격차는 좁혀지기보다 벌어지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는 걸, 그동안의 역사가 보여준 셈입니다. 지방소멸이 이제는 균형발전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반복되는 "왜 호남인가"라는 질문

 

지금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은 1966년 경부고속도로,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당시의 논쟁과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그때도 기존 타당성 검토의 틀로는 무모하다는 반론이 무성했고, "왜 호남인가"를 묻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대구·경북 등 소외되는 지역이 호명되는 구도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엔 소수 대기업 특혜 논란이었다면, 지금은 정부가 글로벌 1등 기업에 압력을 넣는 게 아니냐는 논란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필요한 건 결국 민주적으로 시행하면서도 가능한 한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협력적 거버넌스입니다. 이견은 충분히 검토하되,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집행은 신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7월 1일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1호 조례로 반도체 전략투자 지원 조례를 통과시키고, 정부 통합지원금 20조 원을 필요하면 전액 반도체 기반 조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행정통합의 결실을 미래 산업에 걸겠다는 지역의 결단이자, 중앙정부와의 협력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조율의 선례, 여수 제2정유공장

 

역사에는 이런 갈등을 조율로 풀어낸 선례도 있습니다. 호남 푸대접론이 들끓던 1966년, 정부는 제2정유공장 입지로 여수를 선택했습니다.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한 결정이었고, 이 공장은 훗날 여천석유화학단지의 모태가 됐습니다. 정치적 압력이 경제 논리를 훼손한 게 아니라, 입지의 균형을 잡는 조율로 작동한 사례인 셈입니다.

반도체, 인공지능, 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 자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분배하고 조율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일사불란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일이 되는 쪽으로 중지를 모으는 게 현명한 방향일 수 있습니다.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

 

구조화된 불균등을 바로잡는 데 기계적인 1/N 배분은 답이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불균등을 시정하기 위한 집중 투자가 검토될 필요도 있습니다. 시장에 맡겨둔 결과가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경로의존'의 심화로 이어진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모두 반도체와 에너지를 두고 산업정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피지컬 AI,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링과 새로운 에너지 믹스라는 경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입니다. 승부를 가르는 건 결국 꾸준한 집중력을 얼마나 유지하느냐일 겁니다. 60년 전과 달리 지금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축적된 전문성이라는 자산이 있습니다. 갈라치기가 아니라 조율로 승부하는 정치력,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지혜를 모으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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