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왔습니다!" 문자 뒤에 찾아오는 묵직한 죄책감, 대안은 없을까?
"딩동! 소중한 상품이 배송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스마트폰 화면을 울리는 반가운 알림 문자, 다들 익숙하시죠? 문을 열고 들어가 산처럼 쌓인 택배 상자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방 한구석을 가득 채우는 포장 폐기물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뽁뽁이라 불리는 에어캡부터 종이 완충재, 그리고 차가운 신선식품을 담아온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나 편하자고 이렇게 환경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묵직한 죄책감이 마음 한편을 찌르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택배를 아예 끊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느끼는 이 현실적인 고민과 환경적 부채감을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 같은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와 한국통합물류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5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횟수는 무려 125.5회에 달합니다. 평균 사흘에 한 번꼴로 택배를 받는 엄청난 시대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택배 한 건이 배달될 때마다 막대한 양의 포장재가 소비되고 버려지는데, 그중에서도 가볍고 충격 흡수가 뛰어난 스티로폼은 자연 분해되는 데 최소 500년에서 길게는 1000년 이상이 걸립니다. 잘 썩지도 않고 미세플라스틱으로 쪼개져 지구를 오염시키는 이 골칫덩어리 스티로폼을 대체하기 위해 한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나섰습니다.
버섯균사체와 농업 부산물로 50일 만에 완벽히 분해되는 친환경 포장재를 만든 '어스폼(EARTH FORM)' 정성일 대표의 놀라운 도전과 순환경제 이야기를 생생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1. 썩는 데 500년 스티로폼 그만! 50일이면 분해되는 '어스폼'의 탄생
스타트업 '어스폼'은 택배 급증으로 인한 심각한 포장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이 기업이 개발한 친환경 소재의 이름이기도 한 '어스폼'은 버섯의 균사체와 농업 부산물을 활용해 기존의 화학 플라스틱 기반 스티로폼을 대체하는 생분해성 포장재입니다.
버섯균사체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결합력
버섯균사체는 식물로 치면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 균사체는 성장하면서 주변의 물질들을 서로 강력하게 연결하고 결합하는 아주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스폼은 바로 이 원리를 영리하게 활용했습니다. 톱밥 등으로 만든 배지에 버섯균사체를 접종하면, 균사체가 실처럼 사방으로 퍼지며 재료들을 빽빽하게 엮어줍니다. 덕분에 유해한 화학접착제를 단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고도 기존 스티로폼에 버금가는 단단한 강도와 뛰어난 충격 흡수 성능을 가진 완충 포장재를 구현해 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이로운 생분해성
어스폼의 가장 압도적인 장점은 바로 '완벽한 친환경성'에 있습니다. 정성일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어스폼은 일반적인 토양 환경에 묻었을 때 약 50일 이내에 자연적으로 생분해됩니다.
공인시험기관이 제시한 조건에서는 45일 이내 100% 생분해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바다와 같은 해수 환경에서도 약 150일 이내면 자연 분해됩니다. 수백 년 동안 썩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을 남기는 일반 스티로폼과 달리, 어스폼은 분해 과정에서 그 어떤 유해물질도 발생하지 않고 고스란히 자연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2. 10년 차 제조업 대표, 환경오염을 보며 깨달은 창업의 길
이토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정성일 대표는 원래 바이오나 생물학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시제품 및 맞춤형 제작 공장을 10년 넘게 운영해 온 베테랑 제조업 분야 종사자였습니다.
공장을 운영하며 대량생산 방식보다 맞춤형 커스텀 제작을 주로 하다 보니, 버려지는 폐기물이 유독 눈에 많이 밟혔다고 합니다. 20대 초반부터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정 대표는 제조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폐기물을 보며 "내가 추구하는 환경적 가치와 실제 하는 일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깊은 회의감과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환경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조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중, 그는 해외에서 버섯균사체를 활용해 포장재를 만드는 선진 사례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술을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균사체를 안정적으로 대량 배양하는 기술과 정밀한 형상을 구현하는 제조 기술이 결합되어야 했습니다. 정 대표는 다행히 10년간 임가공 제조업을 하며 쌓아온 탄탄한 기술력과 인프라가 있었기에 "이 분야라면 내가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고, 그렇게 어스폼의 위대한 첫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3. 맨땅에 헤딩하듯 얻어낸 균사체 배양 기술과 레시피 개발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정 대표는 전국의 버섯균사체 전문가들을 무작정 찾아다니고 생물학 및 바이오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자문을 구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제품을 하나씩 직접 손으로 만들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배양 기술'과 '균주 관리'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다행히 뜻을 함께하는 관련 기술 인재들이 팀에 합류하면서 어스폼의 제조 기술과 결합했고, 제품의 완성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어스폼 포장재의 정밀한 제작 과정
어스폼의 제작 공정은 크게 4단계로 이루어집니다.
- 고객이 원하는 제품 형태에 꼭 맞는 정밀한 성형 틀을 제작합니다.
- 톱밥 등으로 만든 배지(균사체가 자랄 수 있는 일종의 배양토)를 틀에 채우고 버섯균사체를 접종합니다.
-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배양하면, 균사체가 배지 전체를 새하얗게 감싸며 틀 모양대로 튼튼하게 자라납니다.
- 틀에서 꺼내어 완벽하게 건조하면 최종 제품이 완성됩니다.
사용하는 균주와 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제품 하나가 완성되는 데는 보통 3일에서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어스폼은 원료 배합과 배양 조건의 조합을 일명 '레시피'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산업군에 맞춰 질감, 강도, 물성을 모두 다르게 구현하기 위해 현재도 수많은 맞춤형 레시피를 운영하며 제품력을 철저히 검증받고 있습니다.
4. 버려지는 '버섯 폐배지', 규제샌드박스로 순환경제의 꽃을 피우다
어스폼의 기술이 진짜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농가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순환경제'를 완벽히 실현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국 버섯 농가에서는 버섯을 수확하고 남은 배지인 '폐배지'가 매년 무려 70만~90만 톤씩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이 막대한 양의 폐배지는 활용처를 찾지 못해 대부분 그대로 폐기되곤 했습니다. 어스폼은 바로 이 버려지는 버섯 폐배지를 핵심 원료로 확보하여 포장재로 재탄생시키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 장벽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상 버섯 폐배지와 같은 식물성 잔재물은 폐기물 재활용 용도가 비료나 사료, 연료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 이를 고부가가치 포장재의 원료로 상업화하는 데 법적 제약이 컸기 때문입니다.
큰 위기 속에서 돌파구가 열렸습니다. 어스폼은 2025년 9월 정부의 '순환경제 규제특례(샌드박스)' 6건 중 하나로 최종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어냈습니다. 법적 규제특례를 통해 어스폼은 마침내 버섯 폐배지를 활용한 친환경 포장재를 합법적으로 생산하고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실증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폐기물로 취급되어 버려지던 자원을 새로운 첨단 산업 소재로 전환하여 상용화할 수 있는 거대한 제도적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를 통해 원재료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산 공정 자동화 연구도 함께 진행하며 시장 확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5. 소형 패키징부터 대형 가전, 그리고 반려동물 장례용품까지 미래의 확장성
현재 어스폼은 가치 소비와 친환경에 관심이 매우 높은 코스메틱 브랜드를 중심으로 향수와 화장품 등 소형 제품의 완충재를 주로 생산하며 시장에서의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성일 대표의 시선은 더 먼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스폼은 대기업 가전제품 포장에 흔히 사용되는 대형 규격형 스티로폼 완충재를 대체할 수 있는 대형 제품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소형 완충재 시장을 넘어 거대한 산업용 플라스틱 기반 스티로폼 사용량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버섯균사체 특유의 무해하고 자연 친화적인 특성을 100% 살려 건축용 단열재 소재는 물론,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한 이들을 위한 반려동물 장례용품 등 완충 포장재 외의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적용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자원의 선순환이라는 본질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소재의 영토를 끝없이 확장해 나가겠다는 포부입니다.
대한민국의 '파타고니아'를 꿈꾸며, 지구와 인간이 공존하는 소비문화를 향해
정성일 대표에게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냐고 묻자, 그는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소비자들이 택배 상자를 열고 쓰레기를 버릴 때 느끼는 환경적 죄책감을 깨끗이 덜어주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친환경 포장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저의 첫 번째 과제입니다."
그는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공익적 가치와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이 어떻게 함께 맞물려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어스폼을 통해 세상에 꼭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친환경 기업의 대명사인 미국의 '파타고니아'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친환경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말이죠.
자연에서 태어나 인간의 물건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임무를 다하면 다시 흔적도 없이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는 버섯 포장재 어스폼. 정성일 대표와 팀원들이 밤낮으로 흘린 땀방울 덕분에, 우리는 조만간 죄책감 대신 지구를 향한 미소를 지으며 택배 상자를 열어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구를 위한 가치 있는 소비, 그리고 쓰레기가 다시 자원이 되는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의 미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어스폼의 아름다운 비상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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